인공지능과 철학에 대한 단상


얼마 전에 재미있는 트윗을 하나 발견했다. GPT3, CLIP, DALL-E 등 AI 학계를 놀라게 하는 혁신적인 모델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OpenAI의 chief scientist인 일리야 서츠키버가, 자신의 트윗을 통해 ‘최근에 나오는 거대 인공신경망은 약간의 의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학계의 영향력이 큰 인물이 이런 발언을 한 만큼, 당연하게도 많은 학계 인사들이 이 트윗을 보고 길고 긴 찬반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토론의 결과 의미있는 결론이나 합의점이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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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공지능에 대한 이러한 물음은 그렇게 신선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논리적 추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인공지능이 도덕 관념을 갖게 만들 수 있을까?’와 같은 물음들은 인공지능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늘 따라다닌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런 질문들이 재등장하는 것을 주의깊게 보게 되는 이유는, 최근 인공지능 모델들이 보여준 성과가 이것이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질문들임을 증명해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단순한 데이터 분류를 넘어, 생성과 관련된 여러 작업들에서도 인간과 구분하기 어렵거나 능가하는 수준의 성능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 모델은 초등 수준의 추론을 할 수 있으며, 아래와 같이 환상적인 그림을 생성해낼 수도 있다(아래의 그림은 OpenAI의 DALL-E 모델이 생성한 것). 이제 학계 최전선에서는 논리적 추론, 선택적 기억, 통합적 인지 등 인간 지능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기능에 하나둘씩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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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빠른 발달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고, ‘지금 고민할 필요가 적은 먼 미래의 문제’라고 치부해오던 질문들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이 이와 관련된 토론에 활발하게 임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 예시로 든 질문들에 대한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논의는 많은 경우 (칸트의 말을 조심스럽게 빌리자면) 공허하다. 우선 질문의 내용부터가 지나치게 모호하다. 인공지능 모델에 의식이 실재하는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식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위에 열거한 다른 질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은 정말 많다. 애초에 의식은 지능적 활동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가? 지능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하위 요소로 나눌 수 있는가? 지능의 하위 요소들은 매개체에 관계 없이 보편적인가? 도덕 관념에 보편적인 요소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직관 없이 오로지 인공지능 모델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에 대한 관찰만으로 논의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것은 공허할뿐더러 다분히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답은 대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사유를 통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해온 것들이다. 그러니 인공지능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을 떠올리고 허술하게 대답하가며 맴도는 과정을 어렵게 반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앞선 질문들에 대해 의미 있는 토론을 하고 싶다면, 공허한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보다는 칸트나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를 읽어보는 편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구자로서 거대한 질문을 갖고 있거나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철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러한 철학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철학자들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반대로 인공지능의 정확한 구조와 원리를 거의 모른다는 것을 많이 느껴왔다. 인공지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해내고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진단은 (다시 한 번 칸트의 말을 조심스럽게 빌리자면) 맹목적일 수 있다. 결국,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에 진지하게 답하려면 인공지능과 철학 모두를 깊게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대해 동의하겠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겨낸 사람은 필자가 아는 한 여전히 극히 드문 것으로 보인다.

필자 또한 앞서 이야기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지만, 그럴수록 인공지능과 철학 양쪽 모두에서 자신의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위의 문제들에 대해 자신 있게 의견을 정리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은 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뒤늦게나마 꾸준히 두 공부를 병행해가려고 한다. 정말로 저 질문들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현재는 사실상 단절되어 있는 두 분야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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